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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2015년 1월 22일 요한복음 6장 14~21절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쓴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하이벨스 목사님은 그 책에서 용기, 자기통제력, 비전, 인내, 온유한 사랑, 엄한 사랑, 희생적인 사랑 그리고 파격적인 사랑을 성숙한 인격의 자질이라고 말했다. 굳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다. 자신의 존재를 위해 인간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며, 그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나 정치적 이유 때문에 자신의 본 모습을 철저하게 감추고 살아간다. 더구나 한나 아렌트의 지적처럼 인간은 사회 속에서 동물과 같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으셨을 때, 군중들은 그런 예수님이 왕이 된다면 자신들은 배고프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사실 요즘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 모든 나라들의 국민들은 경제적 가치를 제1순위로 여기고, 물가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을 나라의 지도자로 선택한다. 빵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지도자를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을 감지한 예수님은 군중들을 떠나 혼자 산으로 가셨다. 빵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떠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산으로 가신 것이다. 그리고 정말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이유가 사람들에게 빵을 제공하는 것인지, 아니면 빵을 주는 것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하나님과 조용한 시간을 갖으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때로 나 자신도 사람들 속에 있다보면 사람들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나 자신이 움직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서 부와 명예가 주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회가 원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사회에 적응하고 사회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일로 인해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물음처럼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우리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다.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자신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감추어져 있던 욕구들이 분출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다. 그 분은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그 시간이 바로 성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셨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예수님은 일부러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셨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주는 부와 명예를 거절할 수 있는 단호한 용기가 필요하고, 믈질적 풍요로움이 줄 수 있는 쾌락과 즐거움에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자기통제력도 필요하며, 하나님께서 나를 이 곳에 보내신 이유와 목적을 바라보는 비전도 잃지 않고, 어떠한 어려움과 유혹 속에서도 인내하며 나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 우직함을 주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