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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2015년 1월 24일 요한복음 6장 30~40절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는 빵과 떡 그리고 밥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떡입니다. 그래서 떡이 있으면 빵이나 밥을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떡이 없고 빵과 밥이 있으면 밥을 먹지 않고 빵을 먹습니다. 떡과 없고 빵도 없고 밥만 있을 때만 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떡도 빵도 그리고 밥도 잘 먹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섭취했던 것 같아 건강을 위해서 좀 줄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요 6:3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어원적으로 보면 “생명의 빵”이 맞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생명의 빵”보다는 “생명의 떡”이 어울릴 것 같아서 그렇게 번역했을 것입니다. 공동번역과 새번역 그리고 현대인의 성경은 모두 “생명의 빵”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빵이나 떡을 다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빵도 떡도 모두 저에게 생명을 주는 맛있는 양식이니까요.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는 자”와 “나를 믿는 자”는 모두 같은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하도록 해주시겠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구약성경에서 주리거나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것은 바로 인간이 현실에서 겪는 위기와 불안을 이기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7장 3절에는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107편 5절에는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집회서 16장 27절에는 “그리고 모든 피조물에게 영원한 질서를 주시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스리신다 그래서 저들은 굶주리지 않고 수고도 느끼지 않으며 제 구실을 저버리지도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 실존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목마름과 굶주림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이 겪었던 것이고,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겪었던 바로 그 문제입니다. 이 목마름과 굶주림은 또한 바로 오늘 우리가 겪는 실존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실존의 위기 앞에 놓인 하갈과 이스마엘을 구원하셨고, 이스라엘을 살리셨습니다. 결국 목마름과 굶주림을 해결해주신다는 것은 바로 위기의 상황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구약에서 하갈과 이스마엘 그리고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목마름과 굶주림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구원받은 백성들이 영원히 목마르거나 굶주리지 않도록 해주실까요? 


그것은 “예수 자신”이 바로 “생명의 떡”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구원의 선물을 받아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보호하심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앞서 인용한 집회서의 말씀처럼 “모든 피조물에게 영원한 질서를 주시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스리신다 그래서 저들은 굶주리지 않고 수고도 느끼지 않으며 제 구실을 저버리지도”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의 떡입니다. 그 분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에게 나아오는 자는 결코 목마르거나 주리지 않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하늘의 만나를 구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의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만나를 구하기 위해서 주님께 나오지 않는지 생각해 봅니다. 영원한 생명보다 지금 당장 현실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현실에 기초하지 않고 현실을 무시하는 영원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기도 합니다. 때로는 저 자신도 그런 유혹에 스스로를 넘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하게 육신의 필요를 위해 주어진 떡은 “참떡"이 아니라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떡이야말로 “참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유대인들에게 만나를 주셨던 것처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떡을 주시나니”(요 6:32)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과 구원은 종말에 있을 미래적인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 현재적으로 경험하고 구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이렇게 노래했던 것 같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아멘!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살기를 소망합니다. 


비전교회 윤기봉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