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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일반

기브아(Gibeah)

기브아 Gibeah

기브아는 '언덕, 구릉'을 의미하며, 성읍들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1. 유다 지파의 성읍
기브아는 유다의 한 성읍으로 예루살렘의 남서쪽 산지에 위치하고 있다(수 15:57).

2.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한 성읍
이 성읍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할당되었으며, 그가 죽자 이 곳에 장사되었다(수 24:33).

3. 베냐민 지파에 속한 성읍
이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성읍으로, 사울의 고향이고(삼상 10:26), 그후 이스라엘을 위한 사울의 수도로(삼상 11:4, 삼상 23:19) 가장 잘 알려졌다. 그래서 이 성읍은 베냐민의 기브아라고 부르기도 하고(삿 19:14, 삿 20:4, 10, 삼상 13:2,15, 삼상 14:16) 사울의 기브아라고 부르기도 한다(삼상 11:4, 삼상 15:34, 삼하 21:6, 사 10:29).

이 성읍은 베냐민 성읍 명단에 철자가‘기브앗’(1394)으로 처음으로 나타난다(수 18:28).
기브아에서 레위인의 첩을 욕보여 죽게 한 수치스러운 사건이 일어났으며, 이 사건으로 인하여 기브아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벤냐민이 치열한 싸움을 하여 그 성읍이 망하였다(삿 19장-20장),
이 사건은 (비고 호 9:9, 호 10:9)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대제사장이었고(삿 20:28), 법궤가 벧엘에 있었을 때(삿 20:18), 여호수아의 정복시에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법궤를 “실로”로 옮겼다.

또한 그 성읍에서 비극적인 일이 일어 났으니, 기브온 주민이 다윗 왕의 허락으로 사울왕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일을 복수하기 위해 사울의 아들(후손 중 일곱 사람)을 기브아에서 목 매어 달아 죽었다(삼하 21:1-9). 이 사건과 관련련하여 신실한 리스바의 행위에 대하여 듣는다(삼하 21:10-14).
기브아는 다윗 군대의 ‘30명’ 용사 중의 한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삼하 23:29)를 배출하였고, 시글락에서 기브아의 다른 두 용사가 다윗을 돕기 위해 왔었다(대상 12:1-3).

사 10:29은 그 성이 앗수르인 앞에서 멸망할 것으로 예언한다. 호세아 역시 전쟁의 나팔소리를 이곳에서 듣는다(호 5:8). 기브아 성읍 변방에도 그 이름이 붙여졌다(삼상 14:2, 삼상 22:6).
예루살렘의 다메섹 성문 북쪽 4.8km 지점 텔 엘 풀은 고대 성읍의 폐허로 덮여 있다.

이 성읍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 언덕을 요새화할 때까지 1세기나 2세기 동안 침체 상태로 있었다, 사울과 요나단이 이 성읍을 정복하였고(삼상 13-14장), 사울은 자신의 궁궐 요새를 세우되 블레셋 사람의 설계를 따랐다. 그것은 최소한 네 개의 구석 망대가 있는 큰 건물로 길이 169피드, 폭 114피드의 규모였다.
다윗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자 기브아는 쇠퇴하였고, B.C. 8세기가 되어서야 재건되었다. 새 성읍은 B.C. 735년경 예루살렘에 대한 공격에서 베가와 르심에 의해 무너진 것 같다. 이곳은 7세기에 재건되었으나,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정복에서 파괴되었다. 그후 헬라 사람들이 정복하였고, B.C. 63년 로마의 팔레스틴 정복 후 다시 정복당하였지만, B.C. 70년 디도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전 마지막으로 파괴되었다. 요르단의 훗세인왕은 최근 1967년 6일 전쟁 바로 직전 언덕 꼭대기에 궁전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참조, WBD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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