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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음의 키가 자랄 수 있도록

살아있다는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변화는 성장으로의 변화도 있고 퇴보에로의 변화도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결국 성장하는지 퇴보하든지 중의 하나이다. 강원도에 살면서 더욱 구체적으로 실감나게 느낄 있는 것은 계절의 변화다. 앞에 펼쳐지는 사계절의 뚜렷한 모습은 자연도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준다. 


우리는 어려을때부터 ' 먹어야 쑥쑥큰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사실 어린시절에 먹을 것을 마음껏 먹지 못하면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아이들은 옛날 우리가 자랄 때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옛날에는 아이들을 보면 "키만 크면 뭐하냐 속을 못차리는데..."라고 했는데, 지금은 "기왕에 못차릴 거면 키라고 커야지..."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외모도 개인의 중요한 스펙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육체와 함께 영혼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육적인 본능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개인의 무분별한 이윤추구로 인해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이 심화되면서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조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러한 시도를 사람 중의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Mill, J. S.)인데, 그는 모든 쾌락이란 행복이고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쾌락의 양만을 중시할 것이라 질적 차이도 존중해야 된다고 말하면서,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낫고,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 유명한 말을 했다. 그는 감각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이 높은 수준의 쾌락이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 마음의 키가 자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