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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염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 힘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3)고 하셨고 바울(빌 4:6)과 베드로(벧전 5:7)도 염려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염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무 생각없이 그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가기를 주님께서 원하실까요? 아마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염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민하고 염려하고 걱정해도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세상인데, 아예 고민이나 걱정 염려도 하지 않는다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계획적으로 살라고 하신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고민도 하지 말고, 미래에 대해 아무런 대책없이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일에 대해 고민하며 계획을 세우고 어떠한 대책을 마련하면서 사는 것과 염려하지 않고 사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염려’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앞일에 대하여 여러가지 마음을 써서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걱정’이란 무엇일까요? ‘걱정'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을(혹은 이나)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염려’라는 것은 "앞일에 대해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으로 속을 태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구약성경 신명기 1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기나긴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신 1:33). 지난 40년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할 길을 먼저 가셔서, 어느 곳에 장막을 쳐야 하는지, 어느 곳에서 유숙해야 하는지를 살펴 보신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야하고, 어디에 장막을 쳐야할지 고민하고 걱정하며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먼저 ‘선발대’로 가신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입니다. 이스라엘은 단지 먼저 가 계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광야 40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계 22:13)임을 알고 또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의 삶과 죽음 그리고 화와 복뿐만 아니라 한 가정과 사회 그리고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또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언제나 먼저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을 때 그 분은 내일에 계셔서 오늘을 사는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내일이란 미지의 세계, 닫혀진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는 부르시는 열려진 세계, 준비된 세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발대로 먼저 가셔서 준비된 그 세계, 이미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시는 그 세계에서 우리에게 손짓하며 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내일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