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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하나님의 방법(행 18:1-18)

바울이 고린도지역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한 지 어언 1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처음에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서 함께 동역하게 하셨고, 회당 옆에 살고 있던 신실한 믿음의 사람 디도 유스도와 또한 온 집안 식구들이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회당장 그리스보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바울의 선교사역에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울의 전도를 통해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10)고 하시면서 바울을 안심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바울은 고린도에 들어온 지 1년 6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생각을 하지 않고 고린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고린도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끌어다가 법정에 세웠습니다. 물론 그들이 고소한 내용은 자체적으로 모순되는 아주 형편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총독 갈리오는 바울을 재판하지 않고 풀어 주었습니다. 화가 난 유대인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렸습니다. 아마 소스데네는 자신이 맡고 있는 회당에서 바울이 주의 복음을 가르치도록 많은 편의를 제공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바울 대신 소스데네에게 화풀이를 한 것 같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바울은 며칠 동안 고린도에 더 머물렀습니다. 아마 자기 때문에 매를 맞은 회당장 소스데네도 위로하고, 예수님을 믿어 새롭게 그리스도인이 된 많은 고린도 형제들에게 자기가 없더라도 신앙생활을 잘 하라고 권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를 타고 수리아로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유대인들이 바울을 총독에게 끌고 가서 고소하도록 허락하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1년 6개월 전에 그 성에는 내 백성이 많아서 아무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사람이 없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1년 6개월만에 사라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처음 부르셨을 때,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모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2차 전도여행에 들어선 바울이 그만 고린도에서 주저 앉아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잃어버렸거나,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급한 데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지만 고소하는 무리들을 동원해서 바울로 하여금 잊고 있었던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도 참 ....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사역에 열매도 있고, 사역하는 목회 현장도 재밌고, 모든 것이 다 편하고... 그러다 보면 목회 매너리즘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처음 자신을 부르신 그 부르심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안주해 버리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입니다. 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좋은 것이 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다시 마음의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간을 갖게 되어서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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