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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부활 후 성령강림까지

부활 후 스물한째 날 _ 바람처럼, 불같이: 성령강림

by 안트레마 2025. 5. 11.

사도행전 2장 1-4절

오순절, 유대력으로는 첫 수확을 감사드리는 날이자,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진 날로도 기억됩니다. 그날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는 예수님의 약속을 붙잡고 모인 제자들이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요함을 찢는 소리가 들립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오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모습이 각 사람 위에 임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신비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머물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불안과 두려움이 성령의 임재로 바뀌는, 놀라운 반전이 벌어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성령은 여전히 바람처럼 오시고 불처럼 임하십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에 ‘보이는 변화’가 당장 없더라도, 성령은 조용히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우리의 시선과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또 불처럼 임하는 성령은 차갑고 굳어버린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하십니다. 오래 묵은 상처, 말 못 할 외로움, 반복되는 삶의 무게 속에서도 다시 ‘살고 싶다’는 마음, 다시 ‘기도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특히 40~60대, 인생의 허리이자 사방에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시기에 성령의 위로와 충만은 더욱 간절합니다. 자녀의 앞날을 염려하며 기도하는 부모의 마음, 경제적 불안과 관계의 거리에서 느끼는 공허함, 신앙의 열정이 식었다는 자책감. 이 모든 것 위에 성령께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임하십니다. 때론 흔들리는 나를 붙드는 이의 손처럼, 때론 말 없는 위로처럼 다가오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결코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도 성령은 우리 각 사람의 삶 가운데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십니다. 우리가 준비된 마음으로 기도하며 기다릴 때, 그분은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다가오십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을 다시 불붙이시는 성령의 은혜가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은혜로우신 성령님, 오늘도 제 마음 가운데 찾아와 주세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조용히 제 안을 만지시는 주님의 숨결을 느끼게 해 주세요. 불같은 사랑으로 굳어진 마음을 녹이시고, 다시 살아갈 힘을 부어 주세요. 저의 일상 속에서도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