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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부활 후 성령강림까지

부활 후 열일곱째 날 _ 우리가 알지 못할 때: 이해하지 못해도

by 안트레마 2025. 5. 7.

요한복음 16장 5-15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날 것이라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이해할 만합니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했던 주님이 떠난다니, 그 공허함과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7절) 떠나시는 것이 오히려 유익하다니요. 당시의 제자들은 이 말씀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에서 종종 이런 순간들을 만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왜 기도해도 응답이 더딘지,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신 것 같은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 바로 그런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다시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13절)

성령님은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까지 아시며, 우리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고민과 아픔도 다루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한 걸음도 나아갈 길을 보지 못할 때, 성령님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이해는 시간이 걸리지만, 인도하심은 지금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너희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리라.”(12절) 때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 보여주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 무거운 짐을 맡기지 않듯,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시고, 남은 부분은 성령께서 조금씩 이해시키고 이끌어 가십니다. 그분은 앞서가시며, 우리 삶의 복잡한 그림을 천천히, 그러나 완벽하게 완성해 가십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도 성령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슬픔과 답답함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인도해 가십니다. 그러니 이해보다 믿음을 먼저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해는 나중에 따라오지만, 믿음은 지금을 살아가게 합니다.


기도
주님, 제가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여전히 제 삶을 붙드시는 성령님을 믿습니다.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 속에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저를 이끌어 주세요.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제 걸음을 맡기며, 오늘도 믿음으로 한 걸음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