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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모님! 테레비 2번 켜 보세요...

어제 사돈댁에서 가져 온 고구마 중 하나를 골라 4등분해서 에어플라이어에 넣고 구운 것과 계란 3개로 만든 스크렘블 그리고 생강차가 오늘 나와 아내의 저녁식사 메뉴다. 아내와 단 둘이 식사를 하게 된 것은 벌써 13년째다. 13년 전에 교회를 개척한다고 재수하던 첫째 아들과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던 둘째 아들에게 자취방을 하나 얻어주고 나와 아내는 강원도 홍천으로 내려온 뒤로 둘이 식사를 하고 있다. 두 아들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 모두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다. 

 

나는 밥을 빨리 먹는 편이다. 그래서 아내는 내가 천천히 먹으라고 아이패드를 식탁 위에 놓고 유튜브를 틀어 놓는다. 요즘에는 주로 여행관련 동영상을 식사하면서 보는데, 그 바람에 먹는 속도가 좀 느려지기는 한 것 같다. 오늘은 오스트리아에서 수제우산을 만드는 장인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서 고구마 반쪽과 스크렘블 에그를 먹었다. 

 

식사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 아내의 휴대폰이 울렸다. 신권사님이다. 남편이 젊은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오면 건넌방에 이불을 깔아 잠자리를 준비해 주었다는 바로 그 권사님이다. 그 남편은 세상을 떠난지 오래고 딸 셋은 미국에 살고 있고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는 권사님이다. 

 

“권사님~~ 안녕하세요?”아내가 살갑게 인사를 한다. 전화기 너머로 권사님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린다. “사모님! 테레비 2번 켜보세요!”

 

“네?”아내는 갑가지 무슨 소리인지 몰라 다시 묻는다. “권사님! 뭐라구요?”권사님의 큰 목소리가 다시 들려 온다. “사모님! 테레비 2번 키라고요!”

 

“뭐가 나와요?”라는 아내의 물음에 권사님은 “일단 한 번 켜봐요”한다. 식탁에 앉아 있던 아내는 이내 일어나 거실로 가서 소파 위에 있던 리모콘을 집어 들고 테레비를 켠다. “권사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지금 키고 있어요.”

 

“이제 됐어요. 권사님!” 나는 식탁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다. 그런데 채널 2번은 홈쇼핑이다. “권사님! 여기는 홈쇼핑인데요?” “사모님! 거기 남자 코트 방송하잖아요? 색깔만 정해서 알려 주세요. 목사님 사 드리려구요.”

 

권사님이 아마 채널을 돌리다가 홈쇼핑 중에 남자 코트 광고가 나오니까 보고 있다가 목사님을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한 것 같다. 아내는 나에게 묻지도 않고 말한다. “권사님! 목사님은 코트 필요 없대요. 원래 추위도 잘 안타기도 하고 또 어디 다닐 때는 차 타고 다니니까 코트 필요 없대요. 안 사도 된대요.”

 

“사모님~ 그래도 없어서 그렇지 있으면 다 입어요. 그냥 색깔만 정해서 알려 주세요.” 강단이 이만저만한 권사님이 아닌 신권사님이 그냥 아내의 한 마디에 물러설 분이 아니다. 사별한 남편이 젊은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을 때도 나는 이 집의 안주인이고 저 여자는 남편의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손님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대접해서 보냈다는 권사님이 아닌가!

 

“권사님! 목사님은 진짜 코트 필요 없대요. 더군다나 요즘은 겨울도 그리 춥지도 않고, 목사님은 추위를 진짜 안타니까 코트 같은 것 없어도 돼요.” 나한테 물어라도 보고 얘기를 하던지… 물어보지도 않고 아내는 내가 그랬다는 것처럼 단호하게 말한다.

 

“사모님~ 그럼 목사님 양복 해드릴까요? 지난 주에 보니까 여름 양복 입으셨던데…” “아니… 권사님, 괜찮아요… 목사님은 양복도 많아요. 목사님이 더워서 여름 양복 입었을거예요. 교회 난로 켜 놓아서 더워서 아마 여름 양복 입었나봐요. 괜찮아요.”

 

“사모님! 그러면 목사님 양복 사드릴께요. 그래도 코트 사서 입으시면 좋은데…”

 

“권사님!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목사님은 건강하고 추위도 잘 안타고 해서 겨울에도 겨울 옷 잘 안 입어요. 내일 교회에서 뵐께요. 안녕히 계세요. 권사님, 먼저 전화 끊으세요.”

 

이렇게 아내와 신권사님의 통화가 끝났다. 아내가 다시 식탁으로 와 앉으며 말했다. “다 들었죠? 코트랑 양복이랑 필요없죠? 당신은 추위도 잘 안 타잖아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홈쇼핑을 보면서 목사인 나에게 코트를 사 주시겠다고 전화하는 권사님도 계시고, 나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나는 추위도 잘 안타니까 코트도 필요없고 양복도 필요없다고 신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내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는 영하 9도까지 내려가서 좀 춥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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