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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2015년 1월 18일 요한복음 5장 19~29절 모든 사람은 부활할 것입니다. 1995년부터 미국의 예일대학교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교양철학 강좌를 진행해온 셀리 케이건교수는 인간은 영혼이 없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기계가 작동을 멈추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기계도 작동을 멈추면 모든 것이 끝난다면서 영생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그는 인간존재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원론과 물리주의라는 것입니다. 이원론자들은 육체와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물리주의자들은 육체만 인정합니다. 그는 영혼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일만한 타당한 근거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케이건이 아무리 인간이 영혼없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더라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인간.. 더보기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부분에 나타난 사연을 보라.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관련해 '넘겨졌다'는 표현이 거듭 나온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위해 그 아들을 넘겨 주셨다. 예수님은 더는 전도하고, 말씀하고, 치유하고, 주도권을 행사하시던 그 예수님이 아니었다. 그분은 이제 많은 일을 그저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침 뱉음을 당했고, 십자가에 끌려갔고, 채찍질 당했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만물이 그분을 통해 창조되었건만 이제 말씀이신 그분이 자신의 피조 세계의 피해자가 되신다.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통제권을 잃고 무력자가 되신 것, 그것이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다. - 헨리 나우웬의 「춤추시는 하나님」중에서 - 더보기
두려움을 이기는 삶 독일어에 운하임리히(unheim lich)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단어이지만 '낯선 두려움'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이다. 프로이트는 'unheimrich' (1919)에서 '낯선 두려움' 개념을 설명한다. 그는 운하임리히를 친밀하지 않은 낯섦이나 지적 불확실성으로만 해석한 '옌취'(Jentsch)와 달리, '운하임리히'에는 이미 '하임리히'라는 반대말이 들어있다고 주장한다. 하임리히는 친근하고, 다정하고, 아늑하고, 친밀하고, 집안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의미하는 반면, 운하임리히는 비밀스럽고, 숨겨져 있으며, 그래서 위협적이면서, 공포스럽고, 괴기하고, 불편하고, 불안한 것이다. 친밀하면서 낯설기 때문에 두려운 대상, 그 대상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생명..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