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먹을 수 없지만
빵을 씹는 것보다는 오래 남는다.
향기로 배부를 수는 없지만
향로의 연기처럼
수직으로 올라가
하늘에 닿는다.
들에 피 백합은 밤이슬에 시들지만
성모 마리아의 순결한 살을 닮은
흰빛이 대낫보다 밝다.
붉은 튤립은 화덕 속의 빵보다
뜨겁게 부풀어
속죄의 피보다 더 짙다.
짐승처럼 허기진 날에도
꽃은 아무 데서나 핀다.
들에도 산에도
먹지 못하는 꽃이지만
그 씨가 말씀이 되어 땅에 떨어지면
나는 가장 향기로운 보리처럼
내 허기진 영혼을 채운다.
- 이여령 -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호승, '결혼에 대하여' (0) | 2014.09.02 |
---|---|
나는 누구인가? (1) | 2014.08.26 |
윤동주의 '십자가' (0) | 2013.07.31 |
내 작은 소망으로 (0) | 2013.07.20 |
야훼는 나의 목자 (0) | 2013.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