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영성2021. 8. 28. 21:18

믿음은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이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이다. 믿음은 친밀하고 인격적인 신뢰를 통해 ‘주님의 강하신 사랑의 손에 저를 맡깁니다’하는 고백이다. 이러한 믿음은 근거 없이 무조건 내일은 더 좋은 날이 될거라고 믿는 낙관주의와는 다르다. "곧 불경기가 그치고 좋은 날이 찾아 올 것이다. 만사가 좋아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말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지만 이런 낙관론자의 말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환경이나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믿음은 변덕을 부리는 환경이나 상황과 자기자신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맡기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어둠에 덮여 있어도, 폭풍우가 몰려와서 다 휩쓸어 갈 것 같아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옳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이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미리 구체적으로 알아야 믿겠다는 것이 아니다. 비록 알 수 없어도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결코 버려두지 아니하실 것이다, 우리를 수치 가운데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아직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실지, 해결의 방법을 나는 모른다. 내 마음은 모든 것을 미리 다 알고 싶고, 이 상황을 내 힘으로 조종하고 싶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세밀한 부분까지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믿는 것이며 이 믿음에 대한 보상은 내가 믿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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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래전 자료를 찾다가 목사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어 구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눈팅만 하다가 인사드립니다😇

    2021.08.29 22: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렇게 찾아와 주시고 글까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2021.08.29 23: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기독교영성2021. 8. 16. 14:41

네이버 지식IN에 "사이비 교주들의 특징은 성경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 그 신도들은 교주를 믿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대부분 무식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초 중 고를 졸업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받은 영은 어디서 왔나요?"라는 질문이 있어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글을 썼는데 질문자께서 채택하셨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이곳에 올려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답변 :

정말 좋은 질문인 것 같습니다.

질문자의 질문 중 사이비교주들에 빠진 신도들은 왜 빠졌을까에 대해 생각하면서 몇 가지 이유로 정리를 합니다.

첫째, 심리적인 이유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과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어도, 뉴스를 보아도 자기의 생각과 일치하며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적 심리를 갖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보수적인 목사님의 설교를 좋아하고 진보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진보적인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 하더라도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신자가 진보적이며 개혁적인 신학에 근거한 설교를 듣고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목사님이 설교를 할 때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경우는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고 믿던 것과 같은 설교를 하기 때문입니다. 사이비교주들에게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따르는 사이비교주가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던 생각(신념)과 같은 말과 행동을, 자신은 하지 못하는데 자신있게 당당하게 하는 것을 보고 빠져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둘째, 사회적인 이유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의 신자들은 보수적입니다. 또한 유교적인 위계질서가 교회 안에 들어와 정착한 경우가 많습니다. 군사부일체처럼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목사가 하나님과 거의 동일시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모든 결정은 임금님이 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그리고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하는 것처럼 교회의 모든 결정은 목사님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 안에 깊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더구나 사이비교주들은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며 자신의 결정이 하나님의 결정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신자들에게 주입시키고 있기 때문에 사이비교주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어느 순간부터 사이비교주가 하나님처럼 절대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셋째, 구조적인 이유입니다. 사이비교주가 갖는 카리스마입니다. 원래 카리스마라는 말의 뜻은 '은혜' 혹은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은사들을 카리스마라고 합니다. 사이비교주가 처음 순수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은사(카리스마)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을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변질되어 자신의 욕심과 야망에 사로 잡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취하는 사이비교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사이비교주와 같은 사람이 되기 전부터 그 교회 혹은 단체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들은 이미 그의 잘못을 잘못으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사이비교주가 지배하는 단체에 머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넷째, 자기 자신의 욕심 때문입니다. 성경은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이비교주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욕심을 채울 곳을 찾다가 자기 만족을 채워줄 수 있다고 찾은 곳이 바로 사이비단체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자기 스스로 사이비단체에 들어가 있는 경우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앙에서는 영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경우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그리스도들 배후에 있는 사단(귀신, 마귀, 악한 영)이 사람들을 미혹해 진리에서 떠나게 만드는 계획에 걸려 드는 경우입니다. 오늘도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벧전 5:8)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혹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질문자의 질문에 적당한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질문자의 질문을 보면서 저도 왜 그런지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감사 드리며 오늘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씀대로 살며 교회를 위해 아름답게 헌신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귀하고 복된 삶을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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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2021. 8. 16. 10:16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내 삶에 엄습해 들어올 때, 내가 왜 이런 일을 만났을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고 용납이 되지 않는 상황일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누구를 원망해서 되지 않습니다. 불평하고 화를 낸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낙심하고 좌절하고 포기하면 더욱 안될 일입니다. 그러한 상황일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와 질병을 치료하시는 여호와 라파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안하고 초조할 때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여호와 샬롬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준비하고 계시는 여호와 이레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를 결코 버리시지 않고 떠나시지도 않으며 망하게 하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정말 어렵고 힘들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할 일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일입니다. 낙심하거나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을 굳게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나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갖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

[혹시라도 여러분 주변에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신 분이 계시다면 그 분들을 위해 잠시라도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마음 안에 긍휼의 마음이 일어난다면 하나님께서 그 분의 기도에 여러분을 통해 응답하실 계획을 갖고 계실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터치하실 때 거부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장 좋은 친구는 어려울 때 드러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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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2021. 7. 8. 13:51

프랑스의 여류 저술가인 시몬느 베이유는 자신의 비망록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영적인 삶의 기초입니다." 이 말을 통해서 시몬느 베이유는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께 발돋움할 때 하나님의 부재와 임재가 서로 나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영적인 삶은 끈기 있게 기다리는 삶입니다. 즉 수많은 좌절의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이 부재하신다는 생각을 깨달아 가는 고통스런 시간 가운데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 한가운데로 오신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최초의 표지를 알아챌 수 있는 것은 기대 속에서의 기다림을 통해서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임재의 신비는 하나님의 부재를 깊이 의식하는 것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국을 발견하며 또 하나님을 사랑하고픈 우리의 바람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지실 때 보이시는 그 사랑으로부터 생긴다는 점을 깨닫는 것은 바로 부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갈망 한가운데입니다. 

- 헨리 나우웬의 '영적 발돋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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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2015. 7. 26. 07:58

하나닝은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신다.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말씀하시기도 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개인에게는 특별하게 말씀하시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있고 우리 각자 개인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또한 그 말을 따른다고 말씀하셨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기만 하면 목자는 양을 잔잔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며 보호하고 필요를 채워준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겸손하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언제나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혹시 내가 들은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구별해야 한다. 자신에게 들려진 말씀이 자신의 욕심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마귀의 음성인지, 하나님의 음성인지 구별해야 한다. 자신의 욕심에 근거한 음성은 이기적이며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다. 마귀의 음성은 급하고 강하며 어떤 행동으로 우리 자신을 강력하게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음성은 조용하다. 그리고 일관성이 있으며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과 선택의 여지를 둔다. 바쁘고 복잡한 시대에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우리의 마음을 모으면 고요함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면 순종할수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많이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유는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는 기쁨으로 신속하게 그리고 완전히 순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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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2015. 6. 20. 23:38

기도는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성미라는 게그우먼이 TV에 나와서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부부가 싸우고 나서 3년 동안이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부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말을 하지 않으면 점점 그 관계는 멀어집니다. 그리고 말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오히려 말을 한다는 것이 어색해지기까지 합니다. 다시 말을 하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내가 이 말을 하면 내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하는데....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더욱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오랫 동안 말을 하지 않아도 사는데는 아무 이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 세상을 사는데 하나님과 말을 하지 않고도 잘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며 살아야 되고, 용서하며 살아야 되고, 거룩하게 살아야 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기 어려울 때, 용서하기가 죽는 것보다 더 힘들 때, 악한 세상에서 온갖 유혹과 시험이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면서 거룩하게 살지 못하도록 우리의 내면을 흔들어 놓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상황과 형편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힘과 능력과 인내와 소망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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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2015. 1. 20. 07:04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을 요구받는다. 첫째, 혼전이나 혼외에서의 순결에 대한 것으로 이런 문제로 인해 온갖 매춘 행위는 심판을 받게 된다. 둘째, 상대방이 성적 결합에 응할 수 없을 때 부부생활상의 절제에 대한 각오에 대한 것으로 바로 이 때 그 정절이 확증된다. 셋째,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은 불행한 결혼의 수난도 끝까지 잘 감내해야만 한다. 불행한 혼인의 가능성은 인간이 서로 친숙하게 되는 그런 방식에서 아주 흔히 출발한다. 



이러한 세 가지 요구사항은 우리들이 본능의 충족을 위해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전적인 헌신과 영웅적인 단념에 대한 위대한 각오만을 가진 한 인간과 인생의 결합을 맺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하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교류하면서 우리의 결혼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한다. 이러한 궁극적인 책임에 근거해서 생활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원칙들과 요구사항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고 우리의 본능을 다스릴 수 있을 때만이 우리는 자유인으로 참다운 자유와 하나님께서 주신 결혼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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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2015. 1. 9. 23:34

올바른 예배가 전제되지 않은 사역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역이 예배를 앞서가면 그 사역의 겉모습은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속은 교만과 허영으로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위험성을 막기 위해서는 예배가 먼저 올바르게 서야 합니다. 사실 주일에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보면 사람들이 정해 놓은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 듯이 보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묵도하고 신앙 고백하고 성경 봉독에 이어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는 몇 년째 목사님의 비슷한 설교가 시작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따분하기 짝이 없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오히려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같이 인간적인 눈으로만 본다면 예배처럼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것도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든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일하면서 라디오를 통하여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혹은 골프를 치러 가는 중에 차에서 라디오 예배 실황 방송을 들은 것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한 표현이 예배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순종은 그리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높은 건물 위에서 떨어지라고 명령하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정해진 시간에 모여 목사님이 준비한 말씀을 듣고 깨달아 그것을 통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하고 감사드리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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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2014. 9. 13. 20:42

이스라엘 엘리트 정보부대 '유닛 8200' 소속 군인 수십 명이 윤리적인 이유로 임무 수행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군참모총장에게 보냈다고 현지 일간 '예디오트 아흐로노트'가 12일 보도했다.

도청과 암호 해독 등을 담당하는 미 국가안보국(NSA)과 유사한 기능의 이스라엘 유닛 2000 군인들의 서한은 이날 예디오트 아흐로노트 신문에 실렸다.

이들은 서한을 통해 유닛 2000 정보 임무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어렵게 하고 이스라엘과의 충돌을 지속화한다고 주장했다.

한 군인은 채널 10 TV에 대부분 임무는 서안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통제 강화 등과 같은 정치적 이유로 추진되고 있으며 안보상 우려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다.

유닛 2000은 소속 군인들은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갖고 있다며 서한에 담긴 주장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출처 :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913_0013166147&cID=10103&pID=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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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2014. 8. 25. 17:39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어떤 이들은 만물 이전에 존재하신 그리스도가 종의 역할을 감당하시고자 스스로 하나님의 대권을 일부 내려놓으신 모습이나,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가 스스로 죽기까지 희생하신 모습 속에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그 본받음을 높이 들리신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행동과 같은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 예수님을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분의 겸손,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시는 그분의 사명,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자신을 버리신 희생, 또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안녕을 더 먼저 생각하는 그분의 마음을 본받음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 리처드 V. 론제네커 엮음, 「신약성경에 나타난 제자도의 유형」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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