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을 보는 눈

'아래'는 없다

지구에서는 중력장 때문에 모든 물체가 '아래'로 낙하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물체가 아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물체가 낙하하기 때문에 '아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아래'라는 개념은 지구가 가진 지역적 조건에 의해 정의된 것이며, 이 지역의 중력장에 의한 산물이고 효과이자 결과다. '아래'는 그저 '낙하의 방향'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전'과 '후'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엔트로피의 방향'에 지나지 않는다. 엔트로피의 증가가 관찰되는 방향을 '시간'이라고 부를 뿐이다. 물체가 낙하하기 때문에 '아래'라는 개념이 생겨나듯,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아래는 '물체가 낙하하는 방향'이고 시간은 '열이 식는 방향'인 셈이다.

- 카를로 로벨리의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