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16세기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강조하며 새로운 구원 이해를 정립하였지만, 예정론은 곧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칼빈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과 이중 예정론을 주장하였고, 이는 개혁주의 신학의 정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론적 구조는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신학적·윤리적 질문을 야기하였다. 알미니우스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존 예정론의 해석을 재구성하려 하였으며, 그의 견해는 이후 알미니안주의로 체계화되었다.¹
Ⅱ. 야코부스 알미니우스의 신학과 항의서(Remonstrance)
야코부스 알미니우스(1560–1609)는 제네바에서 칼빈주의를 수학하고,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예정론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제기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자유와 책임, 특히 신자의 믿음에 대한 응답 가능성을 강조하였다.² 그의 사후 제자들은 1610년 ’항의서(Remonstrance)’를 통해 알미니우스의 사상을 정리하였고, 도르트 총회(1618–1619)에서는 이 입장이 이단으로 규정되었다.³ ‘항의서’는 다섯 가지 교리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은 예정론, 속죄론, 은혜론, 구원의 보존 문제에 대한 알미니안주의의 입장을 간결히 요약한다.
Ⅲ. 알미니안주의의 핵심 교리
1. 전적 타락과 예방적 은혜: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이 아담의 범죄로 인해 본질적으로 타락하였으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방적(prevenient)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며, 이 은혜는 인간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루터와 칼빈이 말한 전적 부패와 구별되며, 인간의 자유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⁴
2. 조건적 선택: 알미니우스는 하나님의 선택이 미리 정해진 무조건적 작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미래 믿음을 미리 아시고 그에 따라 선택하신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며, 인간의 구원 참여를 인정하신다는 신학적 전제를 따른다.⁵
3. 보편적 속죄: 알미니안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속죄의 효력은 믿음을 통해서만 적용된다. 이 교리는 요한일서 2장 2절,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한 것이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라”는 말씀에 근거한다.⁶
4. 저항 가능한 은혜: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에 필수적이지만, 인간은 이 은혜를 거부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지 않으며, 강제적 구원 개념을 지양한다.⁷ 따라서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응답은 신자의 책임이며, 구원은 인격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5. 조건적 구원의 보존: 알미니안주의에 따르면, 구원은 지속적 믿음과 순종 속에서 유지된다. 믿음을 저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을 경우 구원도 상실될 수 있다. 이는 히브리서 6장 4–6절, “한번 빛을 받고 타락한 자는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는 본문에 근거하여 설명된다.⁸
Ⅳ. 칼빈주의와의 비교
칼빈주의는 예정, 속죄, 은혜, 구원의 보존 등에서 알미니안주의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다음은 교리적 차이를 정리한 표이다.
항목 | 칼빈주의 (TULIP) | 알미니안주의 |
전적 타락 | 인간은 전적으로 무력함 | 전적 타락 + 예방적 은혜 |
선택 | 무조건적 선택 | 조건적 선택 |
속죄 | 제한 속죄 (택자만) | 보편적 속죄 (모든 인류) |
은혜 | 불가항력적 은혜 | 저항 가능한 은혜 |
구원 보존 | 성도의 견인 | 구원의 조건적 보존 |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극대화하는 반면,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의 도덕적 책임과 신앙적 참여를 강조한다. 이는 구원론의 차이를 넘어서 신정론과 인간론의 근본적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⁹
Ⅴ. 현대적 수용과 의의
1. 웨슬리안 전통: 18세기 존 웨슬리는 알미니안주의를 조직신학적으로 재정립하였다. 그는 인간의 자유와 성화의 가능성을 강조하며 감리교의 신학적 기초를 마련하였다.¹⁰ 특히 웨슬리의 ‘완전 성화’ 개념은 알미니안주의의 인간 책임 강조와 잘 연결된다.
2. 복음주의 수용: 현대 복음주의는 선교와 회개 설교를 강조하며 알미니안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낸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과 맞물리며, 전도 동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¹¹ 빌리 그래함, 아르.시. 스프로울 등 복음주의 설교자들이 선택과 자유의지에 대해 각각 다른 강조점을 가졌지만, 알미니안주의는 복음주의의 확산과 동력에 기여하였다.
3. 윤리와 사회참여: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신학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에, 실천윤리 및 사회참여와도 연결된다. 성령의 은혜에 응답하는 것은 단지 내면의 구원에 그치지 않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하는 실천으로 확장된다.¹²
Ⅵ. 결론
알미니안주의는 단순히 칼빈주의에 대한 반대 진영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예정론, 은혜, 구원, 자유의지를 신학적으로 조화시키려는 진지한 시도이며, 인간의 응답 가능성과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을 동시에 강조하는 조직신학적 전통이다. 현대 교회는 이 전통을 통해 신자의 책임 있는 신앙생활, 구원에 대한 겸손한 확신, 그리고 선교와 사회참여의 근거를 새롭게 성찰할 수 있다. 알미니안주의는 오늘날의 신학과 목회 현장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고 풍성한 통찰을 제공하는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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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McGrath, Alister E., 『기독교 신학의 역사』, 장성우 옮김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2), 271.
2. Bangs, Carl, 『아르미니우스: 네덜란드 종교개혁 연구』 (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04), 68.
3. Olson, Roger E., 『알미니안 신학: 오해와 진실』, 김광남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102–110.
4. Wesley, John, 『설교집』, 김동수 옮김 (서울: 감리교출판사, 2000), 77.
5. Walls, Jerry L. and Dongell, Joseph R., 『왜 나는 칼빈주의자가 아닌가』 (서울: IVP, 2013), 89.
6. Thorsen, Don, 『기독교 신학 탐구』 (서울: CLC, 2015), 128.
7. Ibid., 135.
8. 김균진, 『구원론 강의』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18), 215–219.
9. 이형기,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비교 연구」, 『신학지남』 제78권 1호 (2011), 53–58.
10. 김재진, 『웨슬리 신학의 흐름과 현대 적용』 (서울: 감리교출판사, 2010), 103–107.
11. 박경수, 『기독교 신학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6), 331.
12. 박은호, 「알미니안주의의 윤리적 구조에 대한 신학적 고찰」, 『기독교윤리연구』 제23집 (2020), 6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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