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24일 제265대 교황으로 즉위한 이는 요셉 알로이지우스 랏씽어(Joseph Aloisius Ratzinger)이다. 그는 베네딕토라는 이름을 선택하여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PP. XVI)로 불리었고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 10개국 언어로 소통할 만큼 명석한 두뇌와 '21세기 최고의 신학자이며 유럽의 최고 지성'으로 칭송을 받았던 신학자이다.
그가 교황이 되기 전 본대학교와 뮌스터대학교의 교수를 거쳐 1966년에 튀빙겐대학교의 교수가 되었을 때, 한스 큉도 같이 교수로 재직했다. 1967년 1968년 독일 대학은 네오마르크시즘에 기반한 좌파학생운동으로 몸살을 앓았다. '성경은 대중을 기만하는 비인간적 문헌'이라거나 '예수에게 저주를!'이라는 전단과 구호들이 휩쓸었다. 이러한 무신론적 열정에 사로잡혀 모든 도덕적 성찰을 부르주아의 썩은 냄새라고 내던져 버리던 1967년 여름, 튀빙겐대학교에서 랏씽어는 '사도신경에 대한 강의'를 했으며, 이 강의가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이라는 책이 태어나게 된 동기다. 우리나라에서는 1974년에 분도출판사에서 초판을 발행했고, 1983년에 재판을 발행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재판(1983년)이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믿습니다.” 이 짧고 강력한 선언은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자 중심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말은 단지 교회 안에서의 종교적 표현을 넘어, 한 인간이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존재론적 결단이 되어야 한다. 요셉 랏씽어는 바로 이 고백을 붙들고, ‘믿음’이라는 행위의 의미를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 이성과 신앙 사이의 긴장 속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이 책은 단지 교리 해설서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을 위한 신앙 안내서이며, 동시에 믿음이라는 행위가 지닌 지성적 의미, 실존적 도전, 공동체적 책임을 성찰하는 신학적 명저다. 시대의 영혼을 꿰뚫어 본 신학자의 통찰로 랏씽어는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은 왜, 그리고 어떻게 믿고 있는가?”
구조와 전개: 사도신경을 따라, 존재의 깊이로
이 책은 사도신경의 세 문단을 따라 구성된다.
-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 창조주 하나님, 삼위일체의 신비
-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과 주되심
-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 교회와 성도, 용서와 부활, 영원한 생명
그러나 랏씽어는 이 전통적인 고백을 단지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살아내야 할 진리의 형식으로 다룬다. 그는 신앙 고백을 ‘기계적 암송’이 아닌 삶 전체를 향한 자기 표현의 행위로 본다.
예컨대 “나는 믿습니다”라는 고백은 단지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세상과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 곧 세상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의 방향 전환이다. 이 고백 안에는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존재가 붙드는 희망, 그리고 불가해한 신비 앞에서의 신뢰가 담겨 있다.
랏싱어의 통찰: 회의와 이성의 시대에서 신앙을 말하다
랏싱어는 이 책에서 ‘믿음의 불확실성’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신앙은 언제나 의심과 나란히 서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말한다:
“믿음은 언제나 회의의 가능성과 싸우는 결정이며, 그것은 진리의 밝은 빛과 그림자 속을 동시에 걷는 길이다.”
이러한 고백은 기독교 신앙을 단순하고 완결된 체계로 보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그는 이성과 신앙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간다. 하이데거, 칼 야스퍼스, 본회퍼, 바르트, 불트만 등 20세기 대표 사상가들과의 성찰적 대화를 통해, 신앙의 언어가 철학의 언어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오늘날 많은 이들이 ‘신’을 떠나는 이유를 단지 무지나 냉소 때문이 아니라, 신앙이 더 이상 의미 있게 들리지 않는 언어로 말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 책은 “신앙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고민이자, ‘신학적 번역’의 시도이기도 하다.
현대 세계를 향한 교회의 자기반성과 선포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은 단지 교리를 재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랏싱어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절정, 하나님-되심을 통해 인간이 되신 분, 십자가를 통해 세상과 인간을 안아주신 사랑의 구체적 형상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신학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역사 속 실제 사건이며 실존적 요청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전능을 보여주는 표지가 아니라, 사랑의 무기력 속에서 드러난 참된 능력이다.
이 고백은 곧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윤리적 부르심으로 이어진다. 그는 또한 ‘교회’에 대해, 과거의 제도적 권위나 형식적 공동체가 아닌, 말씀과 성례로 세워지는 살아 있는 믿음의 공동체로 정의한다. 교회는 단지 교리를 보존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 실제로 경험되고 나누어지는 자리여야 한다.
세속화 시대에 신앙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랏싱어는 세속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신앙의 침묵과 퇴색, 그리고 소외를 깊이 우려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절망이 아니라 정화의 기회로 본다. 수적으로는 작아질 수 있으나, 더 깊고 본질적인 교회가 남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희망은 단지 이념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아낸 순교자들과 신앙의 증인들에 대한 기억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신앙을 보호해야 할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책임 있는 대화의 언어로 여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지 과거의 교리를 변호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진리로 살아가기 위한 현재의 고백이다.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과거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오늘 나의 삶과 선택을 규정하는 실존적 물음이 된다.
‘신앙’을 살아내기 위한 고전적 안내서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은 신학적 깊이를 갖춘 동시에, 일반 신자와 현대인 모두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책이다. 랏싱어는 신앙을 철학적 질문 속에 던져 넣되, 그 안에서 진리의 빛을 찾도록 돕는 안내자다. 그의 글은 지성적이며 동시에 영적이다. 명쾌하면서도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단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되묻게 된다.
이 책은 특히 다음과 같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신앙과 이성의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
- 신앙을 새롭게 배우고자 하는 신학생과 교사
- 교회 안에서 교리를 전하고 가르치는 목회자
- 세속 사회 속에서 신앙의 언어를 새롭게 찾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
이 책은 과거와 현재, 교리와 존재, 이성과 신앙을 잇는 다리와 같은 책이다. 믿음을 잃어버린 시대 속에서 왜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정직하게 묻는 이들에게, 이 책은 깊고 진지한 대화의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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