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신정통주의의 비판과 대안
1. 서론
19세기 후반 유럽의 지성사는 급격한 전환기를 맞았다. 계몽주의와 역사비평학, 자연과학의 발전은 종교 특히 기독교 신학에 대한 인식 전반을 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형성된 자유주의 신학은 전통적 교리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고, 인간 이성과 경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신학적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를 객관적 진리라기보다는 내면적 체험의 표현으로 보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적 이상형이자 도덕적 교사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적 흐름은 20세기 초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충격 속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신정통주의’(Neo-Orthodoxy)이다.
신정통주의는 고전적 개신교 정통주의를 무비판적으로 회복하는 운동이 아니라,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하나님의 계시, 인간의 죄, 그리스도 중심 신학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신학적 기획이었다. 본 논문은 신정통주의 신학자들—특히 카를 바르트(Karl Barth)와 에밀 브루너(Emil Brunner)—의 사상을 중심으로, 이들이 자유주의 신학에 가한 비판과 그 대안적 구성을 조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신정통주의가 단순히 반동적인 흐름이 아닌, 현대 신학사 속에서의 창조적 개입임을 밝히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2. 이론적 개요: 자유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개관
2.1 자유주의 신학의 형성 배경
자유주의 신학은 계몽주의의 유산 위에 세워졌다. 인간 이성과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 역사주의적 접근, 신앙의 심리화와 윤리화는 자유주의 신학의 핵심이었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는 신학을 ‘절대 의존감정’이라는 인간 내면의 종교적 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알브레히트 리츨(Albrecht Ritschl)은 기독교를 윤리적 공동체로 이해하려 하였다. 이들은 전통 교리의 초월성과 객관성을 해체하고, 신학을 인간의 종교적 체험 분석으로 바꾸려 했다¹.
2.2 신정통주의의 등장과 특징
이에 반해 신정통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 신학의 한계를 인식하며 등장하였다. 그 대표자인 카를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Der Römerbrief, 1919)에서 인간 역사 안에서의 계시와 인간의 죄성을 강하게 부각시키며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Gott ist Gott)라는 선언을 통해 하나님의 초월성과 계시의 주도성을 복원하였다². 신정통주의는 인간의 종교적 노력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적 말씀을 신학의 중심에 놓고, 교회의 선포와 계시의 사건성, 성경의 신적 권위를 재강조하였다.
3.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신정통주의의 비판
3.1 계시 개념에 대한 비판
자유주의 신학은 계시를 인간의 내면적 종교 체험이나 윤리적 직관으로 환원하였다. 이에 대해 바르트는 계시는 인간의 인식 범주 안에 갇히지 않는 하나님의 초월적 자기 계시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계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의하며, 이는 성경(Schrift), 설교(Predigt), 예수 그리스도(Christus) 안에서 삼중적으로 드러난다고 보았다³. 브루너 역시 계시를 “인격적 만남”의 사건으로 이해하면서도, 인간 이성의 자연적 능력에 대한 한계를 강조하였다⁴.
3.2 인간론에 대한 비판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도덕성과 잠재력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졌으나, 신정통주의는 이러한 인식을 “죄의식의 상실”로 보았다. 바르트는 인간을 “죄 가운데 있는 자”로 이해하였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어떤 참된 자각도 불가능하다고 보았다⁵. 이러한 인간 이해는 회개와 구속,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강한 강조로 이어진다.
3.3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분리 비판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의 인격과 가르침에 초점을 두고, 그의 신성을 상징적 차원에서 이해하려 하였다. 이에 대해 신정통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모범적 인간으로 축소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를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 즉, 그리스도는 단지 계시의 매개자가 아니라, 계시 자체라는 점에서 질적으로 구분된다⁶.
4. 신정통주의가 제시한 신학적 대안
4.1 하나님의 말씀 중심 신학
바르트는 신학의 출발점을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삼았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책”으로 보았고, 이는 성령을 통한 선포와 교회의 신앙 공동체 안에서 실현된다고 보았다. 설교는 계시의 한 방식이며, 성경은 그 내용을 담은 기록으로서 신앙적 권위를 지닌다⁷.
4.2 십자가 중심의 그리스도론
신정통주의는 구속 사건의 중심성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유일한 통로이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다. 그는 칼케돈 신조의 양성론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을 시대적 언어로 재구성하려 하였다. 브루너 역시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강조하며, 십자가 사건을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의 절정으로 해석하였다⁸.
4.3 신학과 윤리의 관계
자유주의 신학이 윤리를 신학의 핵심으로 삼은 것과 달리, 신정통주의는 윤리를 복음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간주하였다. 신정통주의 윤리는 자율적 도덕보다 “순종”(Gehorsam)의 개념에 가까우며, 이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선 인간의 응답이다⁹.
5. 주요 인물 및 사례: 바르트와 브루너
카를 바르트는 신정통주의의 중심 인물로, 그의 『교회교의학』(Kirchliche Dogmatik)은 20세기 신학의 가장 방대한 체계적 작업 중 하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자유’와 ‘선포된 말씀’의 중심성을 일관되게 강조하며,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 중심성을 극복하려 하였다. 반면 브루너는 바르트보다는 인간 이성과 자연계시의 가능성을 좀 더 열어 두었으나, 본질적으로 계시의 우선성과 하나님의 주권을 공유하였다. 두 사람은 1934년 ‘자연신학 논쟁’을 통해 신정통주의 내부의 긴장도 보여주었지만, 그들의 공통된 비판 의식은 자유주의 신학의 한계를 선명히 드러내는 역할을 하였다¹⁰.
6. 비판적 평가와 결론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 중심성과 도덕주의에 대해 본질적인 비판을 제기하였으며, 기독교 신학이 하나님 중심으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신학적 요구를 일깨웠다. 바르트와 브루너는 계시와 죄, 은혜에 대한 강한 강조를 통해, 복음의 초월성과 사건성을 신학의 중심으로 회복하였다.
그러나 신정통주의 역시 비판을 받는다. 지나치게 계시의 초월성과 단절성을 강조함으로써, 역사와 문화, 실천과 윤리와의 접점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또한 자유주의의 긍정적 유산—인간의 주체성과 사회적 책임—이 충분히 통합되지 못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정통주의는 20세기 신학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인 정향 중 하나로, 현대 신학이 직면한 질문에 대해 여전히 유의미한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
📚 참고문헌
- Schleiermacher, Friedrich. 『기독교 신앙론』. 김균진 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0.
- Barth, Karl. 『로마서 주석』. 최진봉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9.
- Barth, Karl. 『교회교의학 I/1』. 김균진 외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 Brunner, Emil. 『진리로 인도하는 계시』. 이장식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7.
- 김균진. 「신정통주의의 인간 이해」. 『신학사상』 106 (1999): 45-67.
- 김진혁. 『하나님의 초월성과 계시』.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6.
- Torrance, Thomas F.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London: SCM Press, 1962.
- 이종성. 『현대신학의 흐름』.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
- 윤철호. 「신정통주의의 윤리적 함의」. 『기독교사상』 58 (2014): 92-113.
- McGrath, Alister E. Historical Theology: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Oxford: Blackwell, 2001.

'신앙과 신학 > 현대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주의 신학 (Liberal Theology) (0) | 2025.03.16 |
---|---|
현대신학의 다섯 가지 모델과 그 장단점 (0) | 2025.03.16 |
칼 바르트 신학의 특징 (0) | 2025.03.13 |
칼 바르트의 신학과 특징 (0) | 2025.03.13 |
꼭 알아야 할 현대신학자들 (0) | 2025.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