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교수님은 "누가 믿는 자인가"라는 설교에서 "믿음은 어머니의 품속에서 시작되며 어머니의 품은 믿음의 산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마 교수님 자신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의 유산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신 기저에는 더 깊은 차원의 이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어머니의 생명을 나누어 받음으로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어머니를 신뢰하고, 이러한 신뢰를 기초로 다른 인격체에 대한 신뢰감이 생겨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교수님의 이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교회에 다녀본 적이 없었고, 중학교 2학년 말부터 교회에 다닌 나에게 어떻게 믿음이 주어졌는지에 대해 늘 궁금해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믿음의 어머니가 되셨지만 나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신 분입니다. 나는 그 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잘 압니다. 나를 위해서는 세상의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있는, 아니 기꺼이 포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그분에게 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분에게는 그럴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시는 그 분에게서 조건없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맹목적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그 분을 나는 그 어느 것보다 신뢰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생각, 말, 행동, 그 어느 것도 나를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분의 생각과 말이 혹은 행동이 비합리적이고, 상식적이지 않고,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분의 모든 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압니다. 결국 나는 그 분의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 분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상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나는 그분을 "나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줌으로 믿음의 가장 큰 기초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고 교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이란 서로의 운명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일전에 나는 이 말씀을 "믿음이란 서로의 삶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이해했다고 적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말씀이 "믿음이란 서로의 생명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마 이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나에게 나누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나를 위해, 나에게 나누어주신 분입니다. 그분의 그러한 사랑의 행위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신약성경을 통해 그 분의 생각과 가르침 그리고 여러가지 행동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이 왜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왜 그런 말씀을, 그런 행동을 하셨을까 궁금해 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행동들을 하셨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그러한 모든 일의 배후에는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모든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은 바로 나를 향한 사랑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나를 위해서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포기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나를 위해 포기하신 것입니다. 나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분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후, 나는 그 분의 품안에 머무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품은 내 믿음의 산실이고, 나의 믿음은 그 분의 품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내 믿음은 나를 사랑하시는 그 분의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에 눈이 멀어 나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보지 못하는 그 분을 압니다.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것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직 나만 보였고, 그래서 나를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아깝게 여기지 않으셨던 그 분! 나는 그 분을 "나의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합니다. 내 믿음은 그 분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신 그 분에게 나도 내 생명을 나누어 드리고 있습니다. 그 분의 생명을 나누어 받은 내가 그 분을 믿는 것처럼, 내 생명을 나누어 받은 그 분이 나를 믿으시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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