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역사적으로 세세한 부분은 명화하지 않지만 AD 90년 무렵 유대 학자들이 히브리어 성경의 공식 정경을 결정하기 위해 모였던 것 같다. AD 70년 로마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후, 바리새인들로 구성된 얌니아(Jamnia)의 랍비학파가 종교사상의 중심이 되었다. 바로 여기서 이러한 선택 과정이 이루어졌다. 네 가지 기준을 사용해 히브리어 정경에 포함할 책들을 결정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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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적으로 오경과 일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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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적으로 에스라 시대(ca. 400 BC) 이전의 기록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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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적으로 본래 히브리어로 된 기록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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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작성된 기록이어야 했다.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정경 결정과정이 70인역을 폭넓게 사용하는 기독교의 등장으로 촉진되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어떤 학자들은 이것은 유대교 안에 존재했던 차이들과 더 많은 관련이 있었는데, 이러한 차이들이 어떤 책이 권위 있으며 어떤 책이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합의를 통해 해소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 얌니아는 70인역에 포함된 열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5-10세기에 형성된 맛소라 본문은 얌니아의 히브리어 정경을 반영했다. 제롬은 5세기 초 70인역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훨씬 두꺼운 70인역 정경과 얌니아 정경의 차이에 주목했다. 70인역에는 있지만 맛소라 본문에는 없는 저작을 '숨겨진 또는 은밀한 책들'(hidden or secrest books)이라 불렀는데, 외경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 알리스터 맥그래스, [한 권으로 읽는 기독교], 생명의 말씀사. 2009. p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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