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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바나바와 바울의 다툼(행 15:37~41)

 

 

이방인에 대한 할례와 율법준수의 문제가 성령의 역사로 아름답게 해결되고 난 후에 바울과 바나바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그것은 1차 전도여행을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한 믿음의 형제들이 그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돌아보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는 가운데 바나바는 자기의 조카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했으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서로 다투었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져서 바나바는 조카 마가를 데리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각각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 왜 마가 요한은 밤빌리아에서 바울을 떠났을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여기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다. 마가 요한이 바울을 떠난 곳은 밤빌리아 지방의 버가였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자신이 당한 고난에 대해서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고후 11:26)라고 고백하고 있다. 신약학자인 커니베어(Coneybear)는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말한 위험 중에서 강도의 위험은 밤빌리아의 버가와 비시디아 안디옥 사이의 지역에서 겪은 것이라고 말한다. 람세이(Ramsey)도 비시디아 안디옥 지역에서 발결된 수많은 비석에는 그 지역의 안녕을 위해서 수비대와 군사들이 지켰다거나, 강도를 만나는 사건, 물에 익사할 뻔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말한다. 이런 지역적인 상황과 버가에 도착한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야만 했던 선교 일정을 고려할 때, 마가 요한이 강도나 강의 위험이 두려워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떠난 마가 요한에 대해 바울은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행 15:38)라고 못을 박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될 법하다. 더구나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사도행전 13장 13절에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라고 기록함으로 바울 일행을 떠난 마가 요한의 행위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사도행전 15장 38절에서는 좀 더 거친 표현인 '아피스타마이' 즉, '버리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면 밤빌리아의 버가에서 마가 요한은 어려움에 처해 있었던 바울 일행을 버리고 혼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것임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러한 마가 요한을 삼촌인 바나바가  전도여행에 다시 합류시키자고 말했을 때 바울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혼자만 살겠다고 자기를 버린 그를 다시 만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 일이 2년이나 지났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바울은 후에 마가 요한과 화해하고 그와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암시하는 고백을 한다. 골로새서 4장 10절에서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편지하면서 마가 요한을 언급하고 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또한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말함으로써 마가 요한이 자신의 사역에 도움을 주는 동역자임을 밝히고 있다. 이때는 바울이 마가 요한의 문제로 바나바와 결별한 지 10여년 뒤일 것으로 여겨진다. 이 마가 요한은 마가복음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바나바와의 다툼은 바울과 바나바와의 개인적인 일이 아닌 이처럼 마가 요한의 문제 때문이었다. 결국 그들은 서로 헤어져서 바나바는 조카 마가 요한을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갔다. 함께 동역했던 동역자들이 사소한 문제로 다투어 분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선을 이루어가신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때로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가 있다. 어려울 때 서로 힘을 합쳐서 함께 이겨내면 좋을 터인데 바울이 겪었던 것처럼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형제들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과 다시 함께 동역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결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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