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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더 힘써 일해야 할 사람

 

사도행전 16장에는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지역에서 주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옥에 갇히게 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귀신 드려 점치는 여종에게 들어와 있던 귀신을 쫒아낸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여종의 주인은 자기 종이 점치는 귀신이 들려 점을 잘 치니까 그 여종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귀신을 쫒아내니까 더 이상 돈벌이를 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주인은 사람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실라에게 누명을 씌우고 때리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목적으로 대해야 되는 사람을 수단과 도구로 대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내 안에도 그런 모습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 자체로 존귀하고, 존업하고, 소중합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나 종교 그리고 이데올로기 혹은 재산이나 실력, 사회적 지위와는 무관하게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존중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그 사람을 나에게 유익하니까, 나에게 도움이 되니까 혹은 내가 필요해서 ... 사람들을 가까이 하기도 하고 또는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렇지 않고 나에게 유익하지도 않고, 도움도 못되고,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은 무익한 사람, 필요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하찮게 여깁니다. 목적으로 대하지 못하고 수단으로 대하는 경우입니다.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진이 나 옥문이 열리고 자기들을 채우고 있던 착고가 풀어지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합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가 치료해 줍니다. 그리고 온 집안 식구들이 다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날이 밝자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바울과 실라를 놓아주라고 지시하자 그 간수를 바울에게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고 말합니다. 그 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행 16:37). 이 말을 전해 들은 상관들이 깜짝 놀라 달려와서 바울과 실라에게 그 성에서 나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은 초대교회의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스데반이 주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것과 12장에서 사도 요한의 형제 사도 야고보가 헤롯왕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한 일꾼들입니다. 그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어쩌면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바울도 복음을 전했지만 유대인이 아니고 로마인이었기 때문에 감옥에서 풀려나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면서 로마의 시민권자인 바울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어디에서든지 마음 놓고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을 옥에 가두거나 처형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사명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더 힘써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런 자격을 갖추도록 허락하신 것은 이 때, 이 일을 위해서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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