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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신학/신학용어

삼위일체 내에서의 '서열'

by 안트레마 2025. 4. 23.

 

서열(序列, Subordination)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함에 있어 흔히 발생하는 오해 중 하나는 세 위격 간에 우열(優劣) 혹은 서열(序列)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성부는 가장 높고, 성자는 그보다 조금 낮고, 성령은 더 낮다’는 식의 위계적 이해는 정통 삼위일체 교리와 충돌된다. 왜냐하면, 세 위격은 모두 동등한 신성동일한 본질을 가지시며, 본질에 있어서는 어떠한 차이도 없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이 한 본질 안에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며, 위격은 구별되되, 신성과 권위에서는 절대적으로 동등하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왜 ‘성자는 성부께 순종하시고, 성령은 성자에 의해 보내심을 받는다’는 표현이 성경에 반복해서 등장할까? 이때 필요한 개념이 바로 ‘기능적 서열(기능적 위계, Economic Subordination)’이다. 이는 삼위 하나님의 구속 사역 안에서 자발적으로 역할을 나누시는 질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성부는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성자는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시며, 성령은 그 구속의 은혜를 신자들에게 적용하신다. 여기서 나타나는 순서는 기능과 역할의 차이일 뿐, 존재론적 열등함이나 본질의 차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구별은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요한복음 6:38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하신다. 이 말씀은 성자가 성부께 자발적으로 순종하심을 보여주지만, 그분이 성부보다 열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성자께서 성부의 뜻에 완전한 일치와 사랑 안에서 순종하신다는 것은, 삼위 간의 깊은 관계성과 사랑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다.

조직신학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종종 ‘위격 간의 질서(Order within the Trinity)’ 혹은 ‘경제적 삼위일체(Economic Trinity)’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구속사 속에서 세 위격이 어떻게 일하시고 드러나시는지를 이해하는 틀이지, 삼위 간의 본질적 서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도 아리우스주의나 양태론(모달리즘) 같은 이단들은 이 구별을 하지 못해, 하나님의 본질을 왜곡하는 오류에 빠졌다.

따라서 우리가 삼위 하나님의 관계를 이해할 때, ‘서열’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존재론적 서열이 아닌, 기능적 질서의 의미로 한정해야 한다. 세 위격은 사랑 안에서, 완전한 일치 속에서, 자발적으로 다른 역할을 감당하신다. 그리고 그 질서는 인간 사회의 권위 구조처럼 강압적 위계가 아니라, 사랑과 자기 비움에 기초한 신적 조화를 반영한다.

결국, 삼위일체 안의 질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준다. 곧, 동등하지만 다르며, 하나이지만 구별되는 관계 속의 하나님. 이것은 인간의 교회와 공동체, 심지어 가정의 구조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 깊은 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서열이 아니라 관계와 질서, 그리고 사랑의 구조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된 삼위일체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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