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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2015년 1월 20일 요한복음 5장 39~47절

우리 속담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물과 현상의 한 측면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측면을 너무 강조하거나 신뢰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런 경우는 신앙과 진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주시고 생명의 율법을 유산으로 주셨다."(집회서 17:11)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율법이 생명의 원천이라고 확신하고 열심히 율법을 읽고 공부하고 준수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율법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전 율법에 이 사실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율법 자체는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정작 그 율법의 진정한 의미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치 무엇을 가리키기 위해 뻗은 손가락은 보면서 그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목표물은 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오늘 나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율법이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고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 나라는 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통해 현실적이고 일시적이며 물질적인 복만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신앙의 목적이 현실적인 필요의 만족과 추구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분명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