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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성/칼럼

사마리아, 그 오해와 은혜의 땅

by 안트레마 2025. 3. 25.

사마리아, 그 오해와 은혜의 땅

유대인의 멸시에서 복음의 통로로 회복된 땅

"사마리아는 지나가지 맙시다."
이 말은 유대인 사이에서 흔하게 들리던 이야기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이 있음에도, 일부러 요단강 동편으로 돌아가며 사마리아를 피하곤 했죠. 왜 그랬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Samaria)**는 단순한 지역 이름이 아닙니다. 종교적, 민족적, 신학적 오해와 차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된 은혜의 상징이 되는 공간입니다. 오늘은 이 ‘사마리아’라는 땅의 역사와 신학적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땅 한복판에 위치한 지역으로, 남쪽 유다와 북쪽 갈릴리 사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중심부 정도 되겠지요. 북이스라엘의 왕 오므리가 수도를 이곳 사마리아로 정하면서(열왕기상 16장 24절), 사마리아는 정치적으로도 중심지가 됩니다. 하지만 지리적 중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땅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사마리아가 멸시받은 근본 이유는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면서 시작됩니다. 앗수르 제국은 정책적으로 피정복민을 흩어놓고, 그 땅에 여러 민족을 이주시켜 민족적 정체성을 흐리게 했습니다(열왕기하 17장 24절). 이로 인해 사마리아 지역에는 이스라엘 남은 자들과 이방 민족이 결혼하고, 종교도 혼합되며 사마리아인이라는 새로운 민족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모세 오경을 따르지만 예루살렘 성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예배 장소인 그리심 산을 중심으로 신앙을 이어갑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보다 더 밉게 여겨지는 자들’이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피도 종교도 ‘혼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불결하게 여기며 교류를 피했고, 사마리아인은 이에 맞서 별도의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죠. 예수님 당시에도 이 갈등은 여전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 9절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시나이까?”

이 말 속에는 수백 년 간 쌓인 감정의 골이 담겨 있습니다. 단지 물 한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사마리아인과 유대인 사이에 놓인 깊은 장벽을 상징하는 대사였죠.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를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찾아가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 성에서 한 여인을 만나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는 예수님과의 대화 끝에 ‘생수’를 발견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증거하는 첫 사마리아 전도자가 됩니다. 멸시받던 여인이 복음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누가복음 10장 25-37절)를 통해, 유대인들이 멸시하던 그 사마리아인을 참된 이웃의 모범으로 제시하십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사고를 정면으로 도전하는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마리아는 ‘예루살렘-땅끝’이라는 복음의 흐름 속에서 전환지점이자 다리 역할을 하는 지역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마리아는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가 된 셈이죠.

우리도 살다 보면 '사마리아' 같은 존재를 만납니다.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사람들. 나와 다르고, 상처 주었던 사람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마리아를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사마리아는 편견이 깨어지고, 사랑이 회복되며, 복음이 전해지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오셨듯, 우리도 우리의 사마리아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마리아는 한때 종교적 혼합과 배척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화해와 구원의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그 변화는 오늘 우리에게도 가능하다는 소망을 줍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사마리아가 있나요?
예수님처럼, 그 땅을 지나치지 말고 찾아가 보세요.
그곳에서 놀라운 은혜가 시작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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