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의 존재구조
- 허호익-
1. 머릿말
최근 학문의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사조로서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한국교계에서는 대체로 감신대 홍정수 교수 사건으로 인해 포스트모더니즘을 단순히 타종교의 구원을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의 기수로 보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많은 것 같다. 따라서 과정신학적 입장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인간사유의 고유한 한 양식으로 보고 기독교의 존재구조와의 관련성을 새롭게 제시한 존 캅의 견해를 살펴봄으로서 포스트모던니즘의 신학적 수용의 긍정적인 측면과 그 가능성을 살펴보려고 한다.
2.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느 사조보다 다양한 학문에 의해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지만 그 공통되는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로 역사적 계기와 차별성을 중요시 한다는 점이다. 호크하이머(M.Horkheimer)와 아도노르(T.W.Adonor)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모더니즘(계몽주의)이 프리모더니즘를 비판한 데서 시작한 반면에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비판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리핀(D.R.Griffin)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의해 교의적으로 거부된 진리와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데에 개방적이며,이러한 건설적 수정적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근대주의(modernism)와 전근대주의(pre-modernism)의 창조적 종합을 포함한다“고 하였다.
둘째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정신의 세 차원 즉 logos(진과 지), ethos(선과 의), pathos(미와 정)을 통전하는 새로운 담론(소서사)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모더니즘이 인식의 문제(과학)와 정의의 문제(도덕)와 취미의 문제(예술)를 고유한 장르로 분화시킨 것을 비판하고, 그 해체를 통해 하바마스처럼 인지도구적 지식과 도덕실천적 지식과 심미표현적 지식을 통전하려고 한다.
셋체로 프리모더니즘과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각각 시대적 계기를 지닌 ‘총체적 인간정신의 세 유형’으로 이해된다. 스패노스(William V.Spanos)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본질적으로 연대기적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해의 영구적 유형’이라고 하였다.
3. 프리모더니즘 · 모더니즘 · 포스트모더니즘
앞의 논지에 근거하여 인간정신의 세 유형으로서 인간의 지정의라는 세 측면의 정신 작용의 성격이 프리모더니즘과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각각 어떻게 이해 되었는가를 분석하면, 이 삼자의 상응관계와 차이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총체적 면모가 어느 정도 드러나리라 본다.
1) 프리모더니즘(pre-modernism) : 프리모더니즘의 총체적 의식은 원시주술적 세계관이다. 진리와 그 인식(logos)은 주술적 신화에 의해 좌우된다. 테일러는 주술은 ‘원시인의 과학’이라고 하였다. J.G.프레이즈는 주술은 유사성과 전이성의 특징을 지닌다고 하였다. 병자에게 건강한 어린이 옷을 입히면 건강을 회복된다는 것이 그들의 과학적 인식의 방법이었다.
도덕적 판단(ethos)은 주술의 근거한 금기(taboo)에 의해 정당성이 주장된다. 풍요와 다산을 지향하는 주술적 금기가 도덕적 절대 규법이다. 벌과 징계를 피하고 실제적인 이익을 보상받기 위해 금기를 피하여는 것이 행동의 동기가 되는 것이다.
미추의 개념(pathod)도 주객미분의 형태로 표상된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직접적 모방(mimesis)과 근친성(incest)이 미추의 기준이 되며, 나와 다른 것은 무조건 틀린 것, 나쁜 것, 미운 것으로 규정된다. 지역감정과 연고주의는 이런한 전근대적 의식의 반영이다.
프리모더니즘은 합리성과 비합리성, 주관과 객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의식이 미분화되어 있는 우르보스(urbos)의 의식 상태이다. 원시적인 주술적 조작과 카리스마적 타부와 몰아적 광기가 인간의 정신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구조라 할 수 있다.
2) 모더니즘 : 모더니즘은 근대적 세계관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그 역사적 기원에 관한 여러 견해가 있지만 일찌기 야스퍼스는 ‘차축 시대’를 그 기원으로 제시하였다. 기원전 800년과 200년 사이에 세계 도처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원시주술적 세계관을 거부하는 새로운 의식혁명이 공자·불타·엘리야·이사야·예레미아·플라톤 등과 같은 소수의 천재적인 개인들에 의해 전향적으로 등장하여 19세기에 이르러 전인류의 평균적인 의식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차축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전차축시대 대한 투쟁 즉, mytho에 대한 logos의 투쟁과 taboo에 대한 ethos의 투쟁이다. 이러한 기조가 근대의 합리주의와 계몽주의로 꽃피게 된다.
이성과 합리성(logos)을 절대시하게 되고, 주술과 신화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제거된다. 이성에 근거하여 주체와 객체가 엄격하게 이원론적으로 분리되고, 중심과 주변은 위계적으로 분화된다.
가부장적 법과 질서(ethos)가 주술적 타부를 제치고 절대적인 규범으로 제시되었다. 소크라테스의 경우처럼 악법도 법이므로 준수되어야 하는 것이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유린하는 자는 야만족이요 무정부주의자로 처형된다. 이러한 율법주의는 근대의 법치주의로 이어진다.
질서의 형식적 조화는 미학적인 유용성(pathos)을 지닌다. 질서는 아름다운 것이 되고 혼돈은 추한 것이 된다. 질서의 정형미와 조화의 균형미가 극찬된다. 인위적으로 꾸미고 다듬어서 기승전결,황금분활,대위법에 맞추어진 로코코적인 열정이 미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모더니즘은 합리성과 비합리성, 중심과 주변, 자연과 인간를 분리하여 계몽주의의 합리성, 가부장적 질서, 기능적 유용성의 미학이 어울어 진 총체적 정신이라 할 수 있다.
3) 포스트모더니즘 :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형태로든 모더니즘의 한계와 위기를 지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더니즘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이 드러난다. 이에 대하여는 두 입장이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
먼저 하바마스(J.Habermas)는 “모더니즘:미완성의 기획”이라는 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기획을 철저히 완성시키는 것으로 보아 양자의 연속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입장의 post-modernism은 ‘후기근대주의’라 일컬어 진다. 모더니즘은 인식의 문제(과학), 정의의 문제(도덕), 취미의 문제(예술)를 분화시킴으로서 그 기획을 완성시키는데에 실패하였다. 따라서 근대성의 장점을 극대화함으로서 그 위기를 극복하고 인지도구적 지식과 도덕실천적 지식과 심미표현적 지식의 통전을 지향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데리다(Jacque Derrida) 등은 모더니즘의 해체을 통해 모더니즘을 극복하려고 시도하므로, 이런 입장의 post-modernism은 ‘탈근대주의’라 일컬어 진다. 데리다는 니체와 하이데거가 제기한 형이상학 비판 계승하여 모더니즘의 특징으로 규정되는 형이상학적 이성, 현전성, 고유성의 해체를 주장하고, 이러한 모더니즘이 빚어낸 이성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서구중심주의의 이원론과 위계질서의 해체를 통해 주변부를 지향하는 탈중심주의를 역설한다.
리요타(J.F.Lyotard)도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인 정보화는 지식의 규범적 토대와 체계의 해체라고 한다. 모더니즘시대의 철학에서의 형이상학적 합리주의와 도구주의를 비판하고,정치사회학에서의 자본주의나 맑스주의도 인간해방의 거대이론으로서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전체주의적 성격을 비판한다. 미학에서의 모더니즘적인 기능주의의 유용성을 비판한다.
푸코(Michel Foucault) 역시 「지식의 고고학」에서 언표(담론)는 비언표적인 영역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하라’고 하였으나 푸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의 가능성’을 모색하려고 하였다.
「성의 역사」에서 근대주의의 지식과 권력의 연계성을 비판하고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거대담론의 모호한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분석하고, 권력투쟁의 이념논쟁이 헤게모니 쟁탈의 다원적 저항의 형태로 전환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권력의 탈중심성과 비환원성을 지적한 것이다.
「광기의 역사」에서 근대의 합리주의 철학이 전근대적인 광기와 원시성을 이성의 적으로 보고 치료해야 할 병이 아닌 처별하여야 할 죄로 여긴 것을 비판하고 광기와 원시성의 복권을 기도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합리성과 비합리성, 중심과 주변, 자연과 인간의 통합을 통해 초합리성과 정치적 다원주의와 multi-impression의 미학을 지향하는 총체적 정신이라 할 수 있다.
4. 기독교의 존재구조의 특이성과 궁극성
프리모더니즘·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은 각각 인간의 총체적 의식 또는 세계관 또는 존재구조의 세 유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의 언행에 기초한 기독교의 존재구조는 인간정신의 영원한 세 유형중 어느 것에는 속하는 것일까?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기독교를 근대적 존재구조로 해석하였다. 근대성을 추구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수 많은 예수전을 통해 예수는 위대한 이성적 인간의 원형이요, 위대한 계몽주의자로서 도덕적 교사나 사회적 혁명가요, 종교적 감성의 천재로 묘사하었다. 이러한 추세에 제동을 건 슈바이쳐는 자유주의자들이 1세기의 전근대적인 예수를 19세기의 근대적인 인물로 각색 투사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예수는 근대적인 인물이 아니라 자기 생전에 역사 자체가 철저히 종말에 이를 것을 믿고 고대한 묵시가로서 원시적 세계관에 젖어 있던 전근대적 인물로 주장하였다.
이러한 견해의 일부가 불트만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 역시 예수를 전근대적인 인물로 묘사하였다. 예수의 가르침은 원시적 신화적 세계관과 그 언어로 표상되어 있기 때문에, 과학적인 세계관을 가진 현대인들이 그것을 이해하려면 그 신화적 표상을 제거하여야 한다는 저 유명한 성서의 비신화화론과 실존론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슈바이쳐와 불트만은 분명히 예수를 전근대적인(pre-modern) 인물로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존 캅(John Cobb)은 「존재구조의 비교 연구」라는 책에서 차축시대를 전후한 존재구조를 비교하여 ‘기독교의 특이성과 궁극성’을 제시하였다. 전차축시대의 원시적 존재의 신화적 수용적 자각 의식이 차축시대의 반성적 의식화의 단계로 발전하면서 합리화 윤리화 심미화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소크라데스적인 합리적 이성의 존재, 호머적인 심미적 의식의 존재, 히브리 예언자들의 계약신학에 근거한 윤리적 존재라고 하였다. 캅은 예수시대의 바리세주의의 후기 유대교는 차축시대적 존재를 구축하는 데에 집착하였으나 기독교는 차축이전의 요소와 차축시대의 요소를 융화시키려고 한 것에 그 특이성과 궁극성이 있다고 하였다.
캅은 기독교적 존재는 신화적 의식과 합리적 의식을 통전하고 자기 중심성을 극복한 ‘자기 초월적 영적 존재’이다. “영적 존재는 이성과 열정과 의지와 그리고 그 자체마저 초월하는 ‘나’의 나타남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하였다. 예수의 등장으로 결정적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 현재성’의 계시이다. 신의식의 직접성은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로 선포되었고,에수의 신성에 관한 교리로 고백되었다. 이로서 소크라테스적 이성을 완성하고 초월한 것으로 보았다. 영적 존재는 이성을 사용하면서도 그 완성과 초월과 변혁을 지향한다.
자기 초월적 영적 존재는 기독교의 자기초월적 사랑을 통해 전차축시대의 타부에 기초한 본능적 사랑과 바리세적 율법주의의 도덕적 책임감 및 결의론을 모두 극복하였다. 예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골자라고 하였다. 그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온 것이다. 차기초월적 사랑 안에서 율법이 완성되는 것이다.
캅에 의하면 미학에 있어서 전차축시대의 극복은 호머적 존재에 의해 두드러지게 수행되었다. 호머(Homer)는 전차축시대의 심미적 투사의 무의식적 과정을 심미적 격리의 의식적 과정을 통해 극복하였다. 희랍의 비극은 심리적 격리를 무대 위에서 심리적 객관화로 전개하였고, 신전 건축에 있어서는 심미적 배열의 질서로, 조각에서는 심미적 형식미로 구체화하였다. 전차축시대의 주술적이고 직접적인 심미적 충동감과 격앙감이 심미적 격리의 단계를 거쳐 형식적 균형감과 비례감의 질서와 조화를 감상하는 지성적 취미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캅은 참다운 “미는 시각적 형식이라기 보다 영혼의 질이다”고 하였다. 캅이 더 이상 자세하기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의 영적 존재 거룩함과 충만함의 열정과 미적 차원은 전차축시대의 심미적 투사와 모방의 근친성과 차축시대의 질서와 조화의 형식미의 유용성을 극복하고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5.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차축시대의 인물들은 대부분 전차축시대의 요소를 제거하였다. 주술과 타부를 거부하고 이성과 양심에 호소하였다. 소크라테스나나 공자가 신의 게시를 받거나,병을 고치고,귀신축출하고,오병이어의 기적을 행사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한 언행들은 전차축시대의 요소로 이미 배격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도덕적이고 양심적이며, 형식적이고 심미적인 것만을 가르쳤기 때문에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은 것이다.
예수가 활동한 시기의 후기유대교가 전차축시대의 예언운동을 종식시키고 율법주의와 성전중심의 중앙집권적질서와 안식일 준수의 의식주의는 지정의에 관한 차축시대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존 캅에 주장을 정리하면 예수는 차축시대의 후기유대교가 종식시킨 영적 에언운동을 재개하여 전차축시대의 요소들을 회복시켰으며 이로서 ‘전차축시대와 차축시대의 통전을 전개한 후차축시대의 선구자’로서 그 특이성과 궁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독교의 존재구조는 캅이 명시하지 않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총체적 의식에 상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캅의 동료인 그리핀(Griffin)은 명시적으로 프리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을 통전한 포스트모더니즘적 기독교의 전개를 모색하고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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