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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성/칼럼

교회 역사 속 날조와 왜곡에 대한 성찰

by 안트레마 2025. 4. 26.

교회는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이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 역사적 공동체이기도 하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은혜 속에서 자라온 이 공동체 안에는, 때로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이 드러났고, 그 결과 교회 역사 안에는 날조와 왜곡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했다. 예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가 걸어온 길을 신앙적 진실성과 지혜로운 겸손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오류와 왜곡을 정직하게 직면할 때 오히려 더욱 깊은 참된 갱신이 가능해진다.

역사를 살펴보면, 첫 번째로 흔히 오해되고 있는 것은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공인 사건이다. 313년 밀라노 칙령은 단순히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것이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 교회 내부에서는 이 사건을 지나치게 승리주의적으로 해석하며, 세속 권력과 교회의 결합을 긍정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이는 복음이 가진 본래의 순수성과 거룩한 독립성을 흐리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중세에 등장한 '콘스탄틴 기증장'은 교회 권위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조작된 문서였다. 이 문서는 콘스탄틴 황제가 로마와 서방의 통치권을 교황에게 넘겼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15세기 인문주의자 로렌초 발라에 의해 위조로 판명되었다. 이 사건은 교회의 권위가 인간의 힘이나 문서에 의해 세워져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기반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십자군 전쟁은 또 하나의 비극적 사례이다. 교회는 성지를 탈환한다는 명목 아래 무력 사용을 정당화했고, 성전(聖戰)이라는 개념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이는 복음이 가르치는 사랑과 평화의 정신과는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칼을 들지 말라 하셨고(마태복음 26장 52절),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마태복음 5장 44절). 십자군 전쟁은 복음의 빛을 가리우는 안타까운 왜곡의 사례로 남아 있다.

중세 교회의 면죄부 판매는 또 다른 심각한 왜곡이었다.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에베소서 2장 8-9절), 인간의 돈이나 행위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복음의 본질을 오해하게 되었고, 결국 이는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며 종교개혁을 촉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와 함께, 중세 교회는 이단 심문이라는 이름 아래 종교 재판을 통해 고문과 처형을 정당화했다. 진리를 지킨다는 명분이었지만,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자유와 사랑을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진리는 폭력으로 강요될 수 없으며, 참된 신앙은 성령의 자유 안에서만 자라난다(고린도후서 3장 17절)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준다. 진리는 인간의 손에 의해 왜곡될 수 있으며, 따라서 교회는 언제나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할 공동체(Ecclesia semper reformanda)'라는 자각 위에 서야 한다. 복음은 권력이나 탐욕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을 선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전해진 기록과 전통조차도 성경과 성령의 빛 아래에서 겸손하게 검토되고 갱신되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 역시 이 같은 역사적 경고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가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다면, 같은 오류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진리를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겸손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완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이 연약한 공동체를 통해 여전히 일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의 과거를 직면할 때 절망하거나 냉소에 빠지는 대신, 더욱 은혜를 갈망하며 거룩함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요한일서 1장 9절)라는 약속을 붙들고, 진리 안에서 더욱 정직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가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

역사의 날조와 왜곡은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역시 동일한 유혹 앞에 서 있다. 외형적 성장과 사회적 영향력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복음의 본질이 흐려지고 세속적 가치가 스며드는 현상은 이미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첫째, 교회가 권력과 결탁하거나 사회적 성공을 하나님의 축복으로만 해석할 때,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다. 콘스탄틴 시대 이후 교회가 겪었던 승리주의적 왜곡이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마태복음 20장 26절)고 하셨다. 교회의 참된 권위는 세속적 힘이 아니라 섬김과 희생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둘째, 일부에서는 교회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오류와 부패를 은폐하거나 미화하려는 경향도 나타난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교회가 진리를 외면할 때, 외적 평화는 오히려 더 깊은 타락을 초래할 뿐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선언처럼, 교회는 스스로의 허물을 직면할 때에만 참된 자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다.

셋째, 복음의 핵심이 상업화되고 물질화되는 경향 역시 심각한 문제이다. 중세의 면죄부 판매가 그랬던 것처럼, 현대 교회 안에서도 신앙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거나, 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왜곡하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신앙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교회는 복음의 순수성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또한, 십자군 전쟁에서 드러났던 폭력적 종교성의 유산은 오늘날 교회 안의 정치적 분열과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 시대는 이념과 진영 논리가 교회를 분열시키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복음은 어떤 정치적 진영보다 크며,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지향해야 한다(에베소서 4장 3-6절). 오늘날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갱신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할 교회"라는 자기 인식을 되살려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성경으로 돌아가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역사를 잊는 공동체는 결국 스스로를 잃는다. 과거의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붙드는 교회가 될 때, 한국교회는 다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고백한다. 교회는 거룩하고도 연약한 공동체이며, 오직 은혜로만 선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겸손히, 더욱 진실하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장 8절)는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다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