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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눈

헨리 키신저: 새로운 세계질서를 말하다

 
European Pressphoto Agency 
지난 7월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부근 검문소에서 친러시아 무장세력이 보초를 서고 있다.
 
 

헨리 키신저는 현대를 지탱했던 질서의 개념이 위기에 빠졌다고 적었다. 리비아는 내전 중이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는 근본주의자 군대들이 칼리프 통치 국가를 세우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의 미숙한 민주주의는 마비 직전이다. 게다가 러시아와의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협력과 공개적 비난이 엇갈리고 있다. 현대를 지탱했던 질서의 개념이 위기에 빠졌다. 세계 질서의 추구는 오랫동안 거의 전적으로 서구 사회의 개념에 의해 정의됐다. 경제가 성장하고 국가적 자신감이 강화된 미국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수십 년간 국제 리더십을 담당하고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자유와 대의 정치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며 세워진 미국은 자국의 부상을 자유 및 민주주의의 확산과 동일시했으며, 이 힘에 정당하면서도 지속적인 평화를 이룩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질서에 대한 유럽의 전통적인 접근법에서는 국민과 국가를 본질적으로 경쟁적인 존재로 여겼으며, 그들의 야망이 충돌하면서 만들어지는 효과를 제한하기 위해 힘의 균형과 계몽된 정치인들의 협력에 의존했다. 널리 퍼져 있는 미국의 관점에서 사람은 선천적으로 합리적이며 평화적 타협과 상식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확산은 국제 질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였다. 자유시장이 개인을 향상시키며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경제적 상호 의존으로 기존의 국제 경쟁을 대체할 것이었다.

 

세계 질서를 수립하려는 이런 노력이 여러모로 결실을 맺었다. 수많은 독립적 주권국이 세계 대부분의 영토를 지배하고 있다. 민주주의 및 참여 정치의 확산이 보편적 현실은 아닐지라도 공동의 염원이 됐다. 세계적 커뮤니케이션과 금융 네트워크가 실시간으로 작동한다. 1948년부터 세기가 바뀔 때까지의 기간은 인간사의 짧은 순간 동안 미국적 이상주의와 국가 및 힘의 균형에 대한 유럽식 개념이 결합해 초창기 세계 질서가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러나 지구 곳곳의 광대한 지역들은 서구의 질서 개념을 공유한 적이 없으며 마지못해 따르기만 했다. 이제 이런 의구심이 우크라이나 위기와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서구가 수립하고 선포한 질서가 전환점에 서게 된 것이다.

 

먼저, 국제 사회의 공식 기본 단위인 국가의 본질 자체가 여러 압력을 받고 있다. 유럽은 국가를 초월해 주로 소프트파워 원칙에 기반한 외교정책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략의 개념에서 분리된 정당성의 주장이 세계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유럽은 아직 자신에게 국가의 특성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권력의 공백이, 국경 근처에서는 힘의 불균형이 초래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중동의 일부는 종파와 민족에 따라 서로 충돌하는 세력들로 분열됐고, 종교적 무장단체와 그들의 지지세력들은 국경과 자주권을 멋대로 침범하면서 자기 영토를 통제하지 못하는 실패국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아시아가 직면한 도전은 유럽과는 정반대다. 합의된 정당성의 개념과는 무관한 힘의 균형 원칙이 팽배하고 있어 의견의 불일치가 대치 상황 직전까지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 국제 경제와 이를 표면상 지배하는 정치 제도 사이의 충돌도 세계 질서에 필수적인 공동의 목적 의식을 약화시킨다. 경제 시스템은 세계화된 반면, 세계 정치 구조는 여전히 국민국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경제 세계화는 본질적으로 국경을 무시한다. 외교 정책은 국가 간에 충돌하는 목적이나 세계 질서의 이상을 조화시키려고 할 때조차 국가의 경계를 분명히 한다. 이런 역학은 수십 년간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1997년 아시아, 1998년 러시아, 2001년과 2007년의 미국, 2010년 이후의 유럽 등 점점 심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금융위기가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승자들은 이 체제에 대해 별다른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남유럽 국가들처럼 잘못된 구조에 발이 묶여버린 이들을 포함해 이 체제 속의 패자들은 세계 경제 시스템의 기능을 무효화하거나 최소한 방해하는 해결책들을 찾고 있다. 요컨대 국제 질서는 역설에 빠졌다. 번영이 세계화의 성공에 달려 있지만 그 과정은 세계화의 열망에 종종 배치되는 정치적 반작용을 불러일으킨다. 현 세계 질서의 세 번째 결함은 강대국들이 가장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 상의하고 협력할 수 있는 효과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비판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많이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다자적 협의체를 생각해보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회의들의 본질과 빈도는 장기 전략을 설계하는 데 방해가 된다. 최선의 경우에는 미결된 문제를 논의하는 것 이상이 허용되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소셜 미디어’ 행사로서 진행되는 새로운 형식의 정상회담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국제사회의 규칙과 규범의 구조가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것이 공동 선언만으로 확정되서는 안 되며 공통의 신념으로서 육성돼야 한다. 실패의 대가는 국가 간의 대규모 전쟁이라기보다는(일부 지역에서는 이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특정한 국가 시스템과 통치 형식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세력권으로의 진화다. 각 세력권은 그 경계에서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다른 주체에 대해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고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세력권 간 갈등은 국가 간 갈등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

 

현대의 세계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여러 지역 내의 질서 개념을 수립하고 각 지역의 질서를 서로 연결시키는 일관성 있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이와 같은 목표가 꼭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근본주의 운동의 승리가 한 지역에 질서를 불러올 수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혼란을 만들어내거나 타 지역과의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한 국가가 군사적으로 어떤 지역을 지배한다면, 일견 질서가 있어보일지는 몰라도 세계 나머지 지역에서는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개인의 존엄과 참여 정치, 합의한 규칙에 따른 국제 협력 등을 인정하는 국가들의 세계 질서가 우리의 희망일 수 있고 우리의 목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를 위한 발전은 일련의 중간 단계를 통해 지속될 필요가 있다. 미국은 21세기 세계 질서의 진화에서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해내기 위해 스스로 수많은 질문에 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필요하면 단독으로라도 방지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 어떤 다자적 협의체도 지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동맹국의 지지를 받을 경우에만 해내거나 방지하려고 하는 일은 무엇인가? 다자적 협의체나 동맹국의 요구가 있다 하더라도 관여해서는 안 되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가치의 적용은 상황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가?

 

미국은 이를 위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층위에서 생각해야 한다. 보편 원칙의 추구는 다른 지역의 역사, 문화, 안보관의 현실을 인정함과 동시에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힘겨운 수십 년 간의 교훈을 살펴본다 하더라도 미국만의 특수한 본질을 분명히 하는 작업은 지속돼야 한다. 역사는 덜 고통스러워 보이는 길을 택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무시하는 국가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역사는 포괄적인 지정학적 전략이 부재하는 상황에서는 가장 고상한 신념에도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헨리 키신저 박사는 닉슨 대통령과 포드 대통령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냈다. 위는 9월9일 펭귄 프레스가 출간할 예정인 그의 새 책 ‘세계질서(가제, World Order)’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출처 : http://kr.wsj.com/posts/2014/09/01/%ed%97%a8%eb%a6%ac-%ed%82%a4%ec%8b%a0%ec%a0%80-%ec%83%88%eb%a1%9c%ec%9a%b4-%ec%84%b8%ea%b3%84%ec%a7%88%ec%84%9c%eb%a5%bc-%eb%a7%90%ed%95%98%eb%8b%a4/?mod=WSJKor_WSJKRWorld_LeftTo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