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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행 26:13~23) 13절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가에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14절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칠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15절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16절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17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18절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19절 아그.. 더보기
충성스러움보다 의로와야(행 24:1-9) 율곡 이이의 철학적 전모를 잘 보여주는 책인 「답성호원」에 이런 말이 있다. “대개 의로우면 충성스러움을 다할 수 있지만, 충성스럽다고 반드시 의로움을 다할 수는 없는 것이니, 자문(子文)이 초나라에서 재상을 지낸 것은 충성스럽다고는 할 수 있지만, 초나라가 왕이라고 참칭(僭稱)하고 중국을 어지럽힌 일은 의롭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적량공이 몸을 굽힌 것은 충성스럽다고 할 수 있지만, 주나라의 세력을 믿고서 당나라를 위한 것은 의롭고 바른 도리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른 도리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때 어떻게 해야 마땅하겠습니까? 고종(高宗)의 시대에는 천하에 도리가 없으므로 은둔해야 하고 출사할 수 없었습니다. 설혹 불행히 벼슬해서 기미를 보아 물러가지 못하여 무씨의 변을 당했다면, 마땅히 .. 더보기
자신을 살피는 것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이 말씀을 공동번역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을 잘 돌보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얻으신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개역개정판에서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는 말씀을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을 잘 돌보시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나를 살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행동에는 민감하지만 자기 자신의 모습.. 더보기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행 20:7~12) 창문에 걸터 앉아 말씀을 듣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 아마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바울이 강론하고.. 더보기
하나님의 방법(행 18:1-18) 바울이 고린도지역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한 지 어언 1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처음에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서 함께 동역하게 하셨고, 회당 옆에 살고 있던 신실한 믿음의 사람 디도 유스도와 또한 온 집안 식구들이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회당장 그리스보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바울의 선교사역에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울의 전도를 통해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10)고 하시면서 바울을 안심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그랬는.. 더보기
누구의 문제일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아니면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들을 보면 화가 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적은 없지만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한다거나 모욕을 당하면 정말 화가 날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제 안에 있는 자존감이 상처를 받아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목사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정말 화가 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이 격분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격분한 것은 그가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도 아니고, 모욕을 받아서도 아닙니다. 아덴 성읍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처음에 정말 이해가 안 갔습니다. 저는 가끔 산에 갑니다.. 더보기
당당하고 멋있는 사람(행 16:37)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나가라는 상관들의 말에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행 16:37) 자신들이 감옥에서 나가겠다고 말한다. 당당하다. 그리고 멋있다. 감옥에서 나가라고 하면 얼른 일어나서 나갈터인데, 자기들을 감옥에 넣은 그 관리들이 와서 사과하고 친히 자기들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가기 전에는 감옥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것이다. 어떻게 이런 당당함과 자신감이 있을까? 바울은 유대인이면서 로마 시민권자이다. 시민권자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에 대해 사과와 잘못을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당당하게 할 수 있다. 설령 그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하더라도 결코 기가 죽지 않는다. 당당하고 멋있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더보기
더 힘써 일해야 할 사람 사도행전 16장에는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지역에서 주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옥에 갇히게 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귀신 드려 점치는 여종에게 들어와 있던 귀신을 쫒아낸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여종의 주인은 자기 종이 점치는 귀신이 들려 점을 잘 치니까 그 여종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귀신을 쫒아내니까 더 이상 돈벌이를 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주인은 사람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실라에게 누명을 씌우고 때리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목적으로 대해야 되는 사람을 수단과 도구로 대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내 안에도 그런 모습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 자체로 존귀하고, 존업하고, 소중합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 더보기
온전한 순종의 사람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행 16:6~7). 예루살렘에서 바나바와 결별한 후에 바울은 실라와 함께 루스드라에 도착했습니다. 존귀하신 주님의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바울의 열심은 그로 하여금 이제 두번째 전도여행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루스드라에서 하나님은 준비된 일꾼 디모데를 만나게 하셨고 그는 오랫 동안 바울의 동역자로 바울과 함께 사역을 했습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정한 사항들을 그들에게 알려 주었고 이방인인 그들은 할례을 받지 않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우상에게.. 더보기
바나바와 바울의 다툼(행 15:37~41) 이방인에 대한 할례와 율법준수의 문제가 성령의 역사로 아름답게 해결되고 난 후에 바울과 바나바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그것은 1차 전도여행을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한 믿음의 형제들이 그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돌아보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는 가운데 바나바는 자기의 조카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했으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서로 다투었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져서 바나바는 조카 마가를 데리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각각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 왜 마가 요한은 밤빌리아에서 바울을 떠났을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여기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다. 마가 요한이 바울을 떠난 곳은 밤빌리아 지방의.. 더보기